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칼 14세 요한 (문단 편집) === 1812, [[배신|프랑스를 버리다]] === 이처럼 초창기 베르나도트는 일단 나폴레옹의 지시에(마지못해서이긴 하지만) 순순히 따르고 있었고, 양자의 사이는 겉으로나마 양호한 편이었다. 그러나 1812년 둘의 사이는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었다. [[러시아 원정]]을 앞두던 나폴레옹이 갑자기 스웨덴령 포메른을 침공했던 것이다.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앞두고 그의 후방을 안정시키고자 했고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베르나도트가 다스리던 스웨덴이 그의 후방에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. 하필 이 침공은 베르나도트의 생일인 1월 26일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그는 더더욱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. 이로 인해 나폴레옹에 대한 베르나도트의 사감이 크게 악화된 것은 물론, 프랑스와 나폴레옹에 대한 스웨덴의 여론도 분노로 들끓었다. 그럴 마음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으나 설령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다하고자 해도 국민 여론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었다. 결국 베르나도트는 동년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을 천명하는 한편(사실상 나폴레옹에게 당신 편 안 들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다) 영국-러시아와 공개적으로 협상에 들어갔으며, 러시아 전역이 거의 마무리된 시점, 즉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후퇴하는 시기에 2만 병력을 [[리가]]에 파견하여 러시아가 프랑스 군대를 터는데 일조했다. 1813년에 이르러서 베르나도트는 그가 노리던 노르웨이를 얻는 대가로 영국, 러시아와 공개적으로 동맹을 체결하였다. 그는 곧 스웨덴 왕위계승자의 자격으로 스웨덴을 제 6차 대프랑스 동맹에 참가시키고, 대프랑스 동맹의 주력군 중 하나인 북방군[* Army of the North. 러시아, 프로이센, 스웨덴군으로 이루어진 혼성군이었다.]의 총지휘관으로 뤼첸과 바우첸에서 승리한 프랑스군이 베를린을 노리고 쳐들어오는 것을 그로스베렌과 데네비츠에서 방어해냈다. 그리고 결정적으로 [[라이프치히 전투]]에 북방군을 이끌고 참가, 나폴레옹 몰락 후 스웨덴의 지위향상과 이권 획득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. 물론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를 배신자로 규정했고 이 사건 때문에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으로부터 하사받은 퐁트 코르보 공작의 작위는 정말로 박탈된다. 그리고 이 작위는 [[조아킴 뮈라]]의 아들에게 하사되었다. 한편 베르나도트는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매우 소극적으로 전투를 벌였는데, 이 때문에 같은 편인 동맹군에게서 많은 비난을 들었다.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에는 프랑스로 쳐들어가는 다른 동맹군과 갈라져 노르웨이 정복에 나섰으며, 손쉽게 덴마크와 노르웨이군을 제압하고 [[스웨덴-노르웨이 연합 왕국|노르웨이를 스웨덴의 동군연합]] 상대로 만드는데 성공한다. 1814년 4월 퐁텐블로 조약으로 나폴레옹이 퇴위하고 나자, 당시 [[러시아 제국]] 황제 [[알렉산드르 1세]]는 '''베르나도트를 나폴레옹을 대신할 프랑스의 군주로 만들려 했다.''' 사실 알렉산드르 1세는 즉위 초기만 하더라도 꽤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고 절대군주정을 고수하는 반동적인 부르봉 왕조를 복고시키는 것에 적잖은 회의를 품고 있었다. 그가 보기에는 프랑스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혁명의 결과물들을 어느 정도 존중할 수 있는 유연한 인물이 통치하는 것이 좋았고,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베르나도트가 아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. 영국의 역사학자 Dominic Lieven은 베르나도트는 알렉산드르 1세의 의중에 있던 차기 프랑스 통치자 후보 중 하나일 뿐이며, 차르는 베르나도트 외에도 외젠 드 보아르네 등 여러 사람을 고려했다고 한다. 물론 동맹국들은 당연히 거부하였고, [[부르봉 왕정복고]]를 지지하였다.[* 동맹국들이 보기에 베르나도트는 정통성 없는 일개 장군일 뿐이었다. 게다가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서유럽에 미치는 것을 경계했으며, 러시아 차르의 지지를 받는 프랑스의 군주가 세워진다면 프랑스가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놓일 것을 두려워했다.] 대신 베르나도트는 5월 30일 파리 조약 이후 [[빈 회의]]에서 이전에 약속받는 대로 노르웨이 점유를 추인받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